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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생각

내 인생 명작 90년대 순정만화 같이 되새김질하기

by 강원피라미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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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점프트리 A+.  10년전쯤 소장만화책을 대거 폐기했는데  그때 살아남은 몇권중 하나다.

 

 

내 인생은 순정만화를 빼놓고는 회상을 할 수가 없다. 약 20년 동안 난 만화와 한 몸인 듯 살았으니까 말이다.

 

 

국민학교 6학년쯤.. 아마 90년대 초? 엄마를 따라 난생처음 만화방이라는 곳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빌려온 <인어공주를 위하여... >이 만화책은 내 인생의 특이점이 되었다. 이제 그 이전의 삶의 방식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때 말이다. 

 

 

엄마는 어릴때 민 애니라는 만화가 화실에서 일을 하셨다. 국내 순정만화 호황기에서 불황기를 거치며 화실에서 <유리가면>이나 <캔디>등 일본 만화를 베껴그리는 일도 하셨단다. 또 우리 이모는 "조은희"라는 만화가셨다. 나는 필연적으로 순정만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30여 년 희미한 기억으로는 엄마가 이모의 신간이 발매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화방에 들려 이모의 발간 책 (제목이 <미미의 인기는 언제나 톱>이었다. 기억할 분이 계실려나. )을 빌리셨다.

 

 

조은희 작가의 인기작. 왕가의 차르티스. 내용이 꽤 재미있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날 엄마는 요새 인기있는 만화라는 추천에 이미라의  " 인어공주를 위하여" 도 함께 빌려오셨다. 엄마는 그것이 딸내미의 인생을 바꿔놓을 줄 모르셨을 거다 ㅋ 당시 만화방은 좀 불량하다는 인식이 있었어서 엄마가 권유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 엄마가 하셨고... 20대에 내가  만화가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잘 되지도 않고 돈도 없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하고 싶은 거에 충분히 도전해 봤기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재능이란 대를 걸쳐 내려오기가 쉽지 않음을 또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인어공주를 위하여. 이미라. 소장상태가 불량하다 ㅋ

 

 

1. 인어공주를 위하여 (이미라)

 

 

그렇게 순정만화에 눈을 뜨고 중학교에 진학을 하며 만화를 좋아하는 단짝을 만나 나의 사춘기와 순정만화는 항상 함께했다. 그래서 내 첫 사랑을 꼽으라면 당연 이미라의 < 인어공주를 위하여>이다. 특유의 이쁜 그림체와 반짝반짝하는 여주인공의 눈이 나를 사로잡았고, 학원물인데 개그물인가 싶을 정도로 재밌는 작은 소재들, 탄탄한 스토리 등이 좋았다.

 

 

 

나는 이슬비가 되고 싶었고, 서지원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힘들어도 웃고 씩씩한 캔디형의 이슬비. 못생겼다고 구박받는데 그림체는 너무 이뻐서 항상 의아했다. 그래서 못생긴 나도 이슬비에게 정신 합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ㅋㅋ 

이 만화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백장미, 푸르매, 조종인, 조휘인 등의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설렐거라고 확신한다 ㅋ

 

 

이 책속에는 많은 시들이 등장한다. 나는 그것을 일기장에 써놓고 외우고 다녔다. 몇몇 시구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90년대 작가들은 시를 쓰는 능력도 탁월했던 거 같다. 이은혜나 김진 등의 만화에 나오는 독백도 거의 한 편의 시였다. 

 

 

주인공 이슬비의 저 반짝이는 눈을 사랑했다.
못난이라는 여주인공 이슬비. 너무 이쁘지 않은가?
깡패라고 하기에는 너무 곱상한 이미지의 서지원

 

 

대구에 사는 이미라 작가님은 인어공주를 위하여 외에도 <늘푸른 이야기>, <늘 푸른 나무> 등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재 사용하는 뭔가 하나의 세계관도 구축하셨다. 그래서 이슬비는 어떤 때는 공부는 못하지만 씩씩한 캐릭터로 어떨 때는 야무진 우등생으로 나오기도 한다. 

 

 

<은비가 내리는 나라> , < 남성해방 대작전> , <빈의자> 등.. 지금은 내용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여러 스타일의 작품들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2. 별빛속에 ( 강경옥 )

 

 

중등시절 <별빛속에>를 읽었던 그 충격과 감동을 아직 잊지 못한다. 몇 날 며칠을 "시이라젠느".."레디온"..하며 끙끙 앓았었다.

하이텔인가 어디 아이디를 만드는데 시이라젠느 관련 아이디를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웬만한 건 다 있어서 시이이이이라제에엔느쯤으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ㅋ

 

 

순정 SF의 최고 대작중 하나이지 않을까. 영화로 제작된다면 이만한 스토리가 없지 싶은데.. 영화 관계자분들 한번 만들어줘요. 애니메이션 말고 실사로!  이제는 기술력도 되잖아 ㅋㅋㅋ 음..주인공은 누가 좋을까? (막 상상의 나래를 펼쳐 ㅋㅋ) 

 

 

 처음에는 조금 촌스러운 그림체와 지루한 스토리 때문에 재미가 없었다. 주인공이 바로 그  "시이라젠느"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진. 그녀는 먼 행성 카피온의 도피된 제1 왕녀였던 것. 카피온으로 넘어가 각종 정쟁에 휘말리며 여전사로 성장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돕는 레디온과 사랑에 빠진다. 단순히 사랑이야기만 재밌었건게 아니라 외계행성의 여러 설정들도 너무 기발했다. 까칠하지만 멋진 왕녀로 성장한 시이라젠느의 완벽한 엔딩까지. 내 인생 최고의 명작이다. 

 

 

이때쯤 강경옥의 다른 작품. <현재진행형 ing>,< 이카드입니까?> , 그리고 또다른 SF작 < 라비헴폴리스>,<노말시티>등을 쭉 이어서 보았다. 하이센스에 연재되었던 <17세의 나래이션> ㅜㅜ.. 나의 17세 즈음 보았던 이 작품 또한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강경옥 님 만화의 여주인공은 대부분 평범하고 내성적이고 감성적이다. 그래서 나래이션과 생각들을 읽다 보면 주인공의 소심하지만 사랑에 엮이는 그 과정에 몰입된다. 밖에서 사건을 관찰하는 느낌이 아니라 주인공에 빙의된듯한 느낌을 받게 되어 더 그렇다,

 

 

강경옥 작가님은 순정을 기반으로한 찐 순정물, SF물, 호러물(이 카드입니까?)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이야기를 하는 분이다. 황미나, 신일숙, 김진 작가님 만큼 장르가 다양하진 않지만 난 강경옥의 이 모든 장르물을 사랑한다.

 

 

 

3. 아르미안의 네딸들 (신일숙)

 

 

초등학생때 읽어서 대학 진학 때쯤 완결이 나온 장장 10년 연재의 장편 만화. 정말 징하게 신간이 안 나온다며 불평했더랬다. 지금이야 20년 넘게 범인을 못 잡고 있는 명탐정 코난이라는 만화도 있고 하지만 그때는 신기한 일이었다.

 

 

그림도  예술적이고 스토리나 설정도 기가막힌 아르미안의 네딸들!  신일숙은 <리니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나는 아르미안이 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요새 만화가들이 가지지 못한 디테일하고 유려한 그림실력이 있던 세대의 대표주자라고 생각한다. 

 

 

중동 어디쯤 작은 모계왕국에서 왕녀로 태어난 네 딸들의 인생 이야기. 막내딸 "샤르휘나"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모험을 하는 판타지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특히 전쟁의 신 "에일레스"와의 사랑이야기가 많은 친구들의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었다. 진짜 너무 잘생긴 거 아냐? ㅋ 

 

 

신일숙 님의 다른 작품들도 너무 좋다. 환생을 주제로 한 <카르마>, 댕기에 한편씩 연재했던 환상특급 느낌이 나던 단편들, <라이언의 왕녀>, < 1999년 생> 등 주옥같은 작품들도 내 어린 시절과 함께했다. 

 

 

한동안 만화를 보지 않다가 근래 들어 모바일로 <카야>라는 작품을 보았다. 신일숙님의 대단한 상상력은 그대로였다. 나이가 들어도 상상력이란 거는  녹슬지 않는 모양이다. 오래오래 사셔서 좋은 작품 많이 그려주세요^^

 

 

 

 

4. 점프트리 에이플러스  (이은혜)

 

 

 

 

폭풍의 사춘기 중등시절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던 작품이다. 그때 당시 <댕기>라는 격주간지에 연재가 되었는데 친구랑 돈을 보태서 잡지를 사면 제일 먼저 펼쳐보던 만화가 바로 이 < JTA >이다.  서로의 머리를 밀며 두근두근 책장을 펼쳐보면  다정한 모범생 승주와 까칠한 츤데레 태준이 있다. 친구는 승주파, 나는 태준파였다. 다행히 겹쳐서 니꺼 내꺼 싸우지는 않아도 되었다ㅋ 

 

 

지금 생각해 보면 기껏 고등학생주제에 다들 어찌나 어른스러운지.. 30대나 되면 나올법한 소리들이 많았지만, 그게 멋있었던 거 같다. 이 만화 덕에 이승환에 빠져서 <이오공감>은 지금도 내 학창 시절을 대변하는 음반이 되었다. 가끔 멜론에서 찾아 들으면 이때의 감정과 공기와 냄새까지 기억 날것 같고 너무나 그립다. 

 

 

그 뒤 <윙크>에 연재한 <블루>도 재밌었지만, 작품활동을 빨리 끝내신 덕에 많은 작품을 더 보지 못해 아쉽다. 신성우를 매우 좋아했던 작가님. 요새는 뭐하고 계실까 궁금하다. 

 

 

그 외 황미나 <레드문> , 김진 <바람의 나라>, <레모네이드처럼>, 원수연 <풀하우스>, 한승원 <프린세스>

그 뒤 세대로 허리가 긴 요롱이와 긴 다리를 가진 그림체가 유행했다.

유시진 <마니>, 박희정 <호텔 아프리카>, 나예리 <네 멋대로 해라>, 박은아 <다정다감> 등을 사랑했고

특별한 작품은 기억안나지만 권교정, 서문다미, 윤계주 등도 좋아했다. 

 

 

 

 

글을 쓰는 동안  잠시 추억여행을 다녀왔다. 

 

 

하루에 두시간은 만화책을 읽어야 일상이 가능했던 내게 만화는 거의 내 인생 그 자체였다. 그 뒤로 일본 만화 소년만화 등 잡식성으로 읽어댔지만 딱 중학생 때 국내 순정만화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이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좀 더 크면 이런 가슴 아픈 사랑도 해보고 멋진 남자도 만나고 재밌는 사건도 격고.. 이렇게 살게 되겠지라는 미래에 대한 환상이 있었지만, 커보니 별로 그런 거 없더라 ㅋㅋㅋ 만화의 남자 주인공만큼 멋진  남자도 현실에는 잘 없고 여주인공만큼 못생겼는데 매력적인 사람도 없더라 ㅋ 

지금 옆에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둘러보니, 그런 환상이 있던 시절이 참 그립다 ㅋㅋ

물론 현실에서의 사랑과 행복또한 있지만 순수했던 그 시절이 참 좋았던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돌아볼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순정만화에 감사하다. 삭막한 학교생활에 이마저도 없었으면 빛나던 청춘시절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찌 느껴볼 수나 있었을까. 나이가 드니 자꾸 추억에 매달리게 된다. 나에게 이런저런 추억이 많음에 감사한다. 그 시절 한국 순정만화가 님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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